[타입브랜딩]여기어때 폰트 어때?

타입브랜딩


인생은 선택의 연속, 여행도 폰트도

2023년 10월, 한글날을 맞아 업그레이드된 「여기어때 잘난체」와 새롭게 디자인한 「여기어때 잘난체 고딕」이 출시되었습니다. 약 5년 전 출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잘난체」가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난 것인데요. 

 지난 5년간 다양하게 사용되어 온 「잘난체」  성동구청 홈페이지


‘여기어때’와 작년 3월에 다시 만나 폰트가 출시되기까지 지나온 약 6개월간의 시간을 살펴보니 그 과정이 일련의 여행길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눈앞에 놓인 여러 가지 갈림길 중에 어떤 것이 가장 나은 방향일 지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최종 목적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특히나 그랬습니다. 그럼 폰트를 리뉴얼하고 새롭게 제작하면서 저희가 지나온 여러가지 선택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실까요?



우리 어디로 가야할까?

긴긴 디자인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희는 어떤 곳을 향해 가야 할지 큰 방향을 정해야 했어요. 함께 킥오프 미팅을 진행하며 ‘여기어때’가 가진 현재의 모습, 앞으로의 향할 방향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어때’는 국내 숙박 플랫폼의 모습을 넘어 해외 여행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고 이에 맞춰 「잘난체」도 조금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는데요. 이에 따라 기존 「잘난체」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지고 있던 불편한 점들을 파악하면서 큰 방향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사용하던 「잘난체」는 여러가지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2,350자로 만들어져 현재 사용하는 신조어나 외래어 표기에 불편함이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잘난체」의 둥근 윗 획 마무리가 약간의 귀여운 인상을 가지고 있어 보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기존의 「잘난체」는 한글 전체 음절을 커버하는 11,172자로 확장하면서 한글과의 크기 차이로 인해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던 라틴과 숫자들을 다듬어 업그레이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조금 더 뉴트럴하고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인상의 제목용 폰트를 새롭게 제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1,172자 확장으로 타이핑이 가능해진 단어들



열두 개로 갈린 조각난 골목길

명확한 목적지가 설정되었으니 이제는 그곳까지 가는 길들을 탐색해 볼 시간입니다. 첫 킥오프 미팅 이후, 새롭게 제작할 고딕 폰트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하였는데요. 특유의 경쾌한 인상을 잃지 않되, 조금 더 ‘가독성을 높인 폰트’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다방면으로 고민했습니다. 그중에서 기존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되, 둥근 획의 디테일을 삭제하고 가독성을 위해 약간의 곡률과 두께를 조정한 안이 최종 선택되었어요.

이후 폰트 제작에 들어가면서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이슈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요. ‘여기어때’에서는 이런 순간마다 빠르게 결정하곤 했습니다. ‘가독성을 높인다’는 방향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명확하게 길을 찾아나갔던 것 같아요. 아래에서 디자인을 살펴보며 저희가 마주했던 선택의 순간들을 보여드릴게요.


  1. 라틴과 숫자

우선 기존 「잘난체」에서 라틴과 숫자를 조정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여기어때’ 쪽에서 먼저 기존의 「잘난체」를 사용하며 어색하게 느꼈던 부분들을 짚어주었습니다.

‘여기어때’는 서비스 특성상 날짜와 가격 표기가 잦은데, 기존의 「잘난체」는 그 당시 미감에 맞춰 라틴과 숫자가 한글보다 조금 작게 디자인되어 있었거든요. 또한 숫자가 거의 고정폭에 가깝게 디자인되어 각 숫자가 가진 흰 공간이 달라 보이는 이슈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라틴과 숫자의 크기와 위치를 한글에 맞추고 숫자가 조금 더 고른 흰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가변폭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새로운 「잘난체 고딕」의 숫자를 디자인할 때 또 한 번 선택의 순간이 있었는데요. 바로 6과 9의 형태였습니다. 컨셉 안에서 가능한 방향을 총 3가지를 제안 드렸고, 최종적으로 한글과의 매치를 고려하여 마지막 형태가 선택되었습니다.

고정폭에 가깝게 디자인된 「잘난체」 2018 ver/  가변폭으로 수정된 「잘난체」 2023 ver/ 다양한 형태의 '6' 디자인


  1. 곡선의 형태

기존의 「잘난체」는 경쾌하고 위트 있는 모습을 표현한 곡선의 형태가 돋보이는 폰트였는데요. 가끔은 특징적인 형태가 많이 반복되다 보면 가독성을 해치기도 해요. 「잘난체 고딕」에서는 기존의 폰트보다 가독성을 우선시하여 이러한 곡률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들고 필요한 경우 의논을 통해 특징을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잘난체」와 「잘난체 고딕」의 곡률 비교


  1. 뗄까? 붙일까?

기존의 「잘난체」에서는 네모난 아래 획 마감과 둥근 윗 획 마감이 서로 닿으며 자소를 구분 가능했던 것에 비해 「잘난체 고딕」에서는 둥근 획 마감이 사라지면서 특정 자소들에서 획들 간의 부딪힘이 심해졌습니다. 또한 업그레이드된 「잘난체」에서도 기존에 없던 겹받침 + 'ㅠ' 모음의 조합이 새롭게 디자인되며 획들 간의 부딪힘이 발생했어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소 간의 교통정리가 필요했는데요. 아래와 같은 글자들에서 그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테스트와 논의를 거듭한 끝에 판독성을 위하여 「잘난체 고딕」과 업그레이드된 「잘난체」의 겹받침에서는 중성과 종성을 완전히 떨어트리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경우에 따라 연결되거나 분리되는 자소 간 획들


이와 더불어 기존에 없었던 글자들이 만들어지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요. 바로 ‘ㅍ'에서의 판독성 문제였습니다. 둥근 윗 획마감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가로획과 세로획이 떨어지게 디자인되었던 ‘ㅍ’이 ‘ㅛ’모음과 구분이 잘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나게 된 것인데요. 중간 검수 과정 중 ‘여기어때’ 쪽에서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이슈를 전달 주셨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의 ‘ㅍ'을 테스트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장단점을 살펴본 결과, 각 폰트의 방향성에 맞춰 「잘난체 고딕」에서는 판독성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초성 'ㅍ’은 떨어트리되 종성 'ㅍ’은 붙이는 것으로, 「잘난체」에서는 둥근 마감획의 특징을 조금 더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초성과 종성 모두 떨어트리는 기존의 디자인을 유지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테스트한 초성 ‘ㅍ'의 형태와 최종 결정된 'ㅍ’의 디자인


이외에도 더욱 디테일한 고민 지점들이 많았지만 모두 이야기하기엔 스크롤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쯤에서 완성된 「잘난체」와 「잘난체 고딕」의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완성된 「잘난체」와 「잘난체 고딕」의 모습



진정한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하게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

‘여기어때’에서는 폰트 기획 단계에서부터 여행과 관련된 딩벳을 추가하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는데요. 여기에 사용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특정 조합이 되면 글자가 딩벳으로 전환되는 오픈 타입 피쳐 기능을 적용해 보자는 의견이 더해졌고, 최종적으로 127개의 귀여운 딩벳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딩벳은 ‘여기어때’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전달해주면 산돌의 디자이너가 이를 폰트화하는 과정을 통해 제작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도 딩벳의 크기, 간격 등의 여러 가지 선택해야 할 사항들이 정말 많았어요. 여러 번의 테스트 결과를 주고 받은 끝에 사용자의 사용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폰트와 어울리는 크기와 간격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지만 수많은 고민이 들어간 귀여운 딩벳들은 #과 여행 관련 단어를 조합하면 확인해 보실 수 있는데요. 사용하시는 분들도 # 뒤에 다양한 여행 관련 단어를 타이핑해 보며 예상치 못한 소소한 재미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여기어때’와의 즐거웠던 여정을 마치며

이렇게 약 6개월간의 짧고도 길었던 디자인 여정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폰트가 출시된 이후로도 다양한 프로모션이 진행되었는데요. 그 중 이번 프로젝트의 담당자이신 ‘여기어때’의 쏭님과 직접 만나 포춘코리아의 인터뷰(링크)를 진행하면서 프로젝트를 함께 갈무리하였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외에도 ‘여기어때’에서 발행한 아티클(링크)에서 더욱더 상세한 브랜딩 과정을 볼 수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시고, 멋진 그래픽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잘난체」를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이 웹사이트(링크)를 참조해 보시길 바라요.

돌이켜 보니 그간 마주한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을 무사히 지나쳐 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의견을 나누며 우선순위를 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말 신기하기도, 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어때’ 브랜드를 꼭 닮아 유쾌함과 단단함을 동시에 가진 여기어때 「잘난체」와 「잘난체 고딕」 많은 사랑 부탁드리고,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폰트 속 아주 작은 세상을 여행하는 재미와 즐거움을 잠시나마 느끼셨길 바랍니다.



이유빈
타입디자인팀
글자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거기에 약간의 목소리를 입히는 일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