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폰트에서 컬러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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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에도 색이 있다? 

기존의 폰트는 흑과 백, 선과 윤곽선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글자에 색상을 입히려면 폰트를 아웃라인으로 전환하여 색을 입혀줘야 했으며, 글자마다 그라데이션이나 다양한 색상을 집어넣으려면 한 글자 한 글자 수정해 줘야 했습니다. 이마저도 해당 기능을 지원하는 일부 앱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죠. 대부분의 편집기에선 흑백의 폰트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폰트만으로도 글자에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요. 오늘은 잘 몰랐지만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컬러폰트’와 색상을 가장 잘 활용하는 문자인 ‘이모지 폰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폰트의 역사 

‘컬러폰트’는 말 그대로 글자에 색상이 포함된 폰트입니다. 일반적인 폰트는 글자에 검은 윤곽선 데이터만 담고 있다면 컬러폰트는 글자마다 비트맵 이미지 혹은 색상 값이 포함된 윤곽선 데이터를 담고 있습니다. 덕분에 프로그램에서 별도의 변환 작업 없이도 색상이 포함된 글자를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글자를 검정색이 아닌 별도의 색으로 출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폰트에 컬러가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컬러폰트가 개발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선 폰트의 역사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폰트는 ‘디지털 폰트’로 통칭되며 키보드와 같은 입력기기를 이용해 특정 코드를 입력하면 해당 코드에 등록해 둔 디자인이 출력되도록 만든 일종의 프로그램입니다. 디지털 폰트가 처음 개발된 건 개인용 컴퓨터(PC)가 처음 상용화된 1970년대입니다. 50년이 넘는 시절 동안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 폰트도 사용자의 수요에 맞게 발전되어 왔습니다.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바이트 단위였던 70년대 초기의 개인용 컴퓨터에선 모든 프로그램을 작은 용량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픽셀 단위의 표현을 통해 적은 용량으로 글자를 표현할 수 있는 비트맵 폰트 기술이 가장 먼저 개발되었습니다. 네모난 픽셀 단위로만 표현할 수 있는 비트맵 폰트는 해상도가 커질수록 형태적으로 아쉬웠지만 당시에는 대안이 없어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컴퓨터 기술의 발전 속에서 저장 용량의 비약적인 상승으로 인해 폰트의 용량 문제가 해소되면서 해상도의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요구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여러 기업에서 비트맵 폰트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해상도를 키워도 동일한 형태를 출력할 수 있는 벡터 폰트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디스플레이의 지원 해상도에 따라 출력 상태가 달라지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벡터 폰트의 출현 이후로 해상도의 제약은 대부분 해결되었습니다. 현재 제작되는 대부분의 폰트에 이 기술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초의 디지털 비트맵 폰트 Digi Grotesk
출처: This Was The First Computer Font(
링크)


 

이모지의 출현: 컬러폰트의 시작 

시간이 흘러 90년대 개인용 모바일 기기가 보급되면서 이메일, 핸드폰 문자 같은 제한된 환경 안에서 글자 이상의 소통 수단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일본에서 ‘이모지’(emoji)라는 새로운 문자가 세상에 등장합니다. 일본어 絵文字(에모지(그림+문자))를 어원으로 하는 이모지는 감정, 개념, 사물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 문자를 의미합니다. 초기 180여 개밖에 되지 않았던 이모지는 점차 인기가 많아지며 여러 기업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정해진 규격이 없었기에 기업마다 이모지의 종류, 형태가 달랐으며 다른 기기와 호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용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모지의 인기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구글, 애플 등의 대기업에서 이모지를 규격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국제 문자 표준인 유니코드에 이모지가 등록되면서 정식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모지에 국제 규격이 생기고 문자로써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모지로 구성된 폰트들이 출시되었고, 사용자들은 보다 쉽게 이모지를 키보드로 입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7년 소프트뱅크에서 제작한 초창기 이모지
출처: The History of the Emoji — Pursue Persuade(
링크)


 

이모지 사용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대두됩니다. 당시의 폰트 기술상 검정색으로만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에 초창기 이모지 폰트도 흑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는데요. 이모지 전까지는 글자에 색상을 넣고자 하는 수요가 높지 않았고, 별도의 프로그램에서 폰트를 단일 색상 정도로는 변환해 줄 수 있었으며, 용량과 호환성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폰트에 색상 데이터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모지는 표현을 더 섬세하게 하려면 하나의 이미지에도 여러 색상이 복잡하게 들어가야 했기에 단일 색상으로는 표현에 한계가 있었죠.

결국 흑백의 폰트로는 웃는 얼굴, 빨간 하트, 음식, 동물과 같은 이모지의 디테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고, 사용자들은 더 생생하고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풀컬러 이모지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다수의 플랫폼 기업들이 색상이 들어간 이모지를 제공하기 위해 ‘컬러폰트’ 기술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결국 2011년 애플에서 아이폰과 맥북에서 기본으로 사용할 수 있는 ‘Apple Color Emoji’ 폰트를 선보이며 비트맵 이미지를 지원하는 최초의 컬러폰트 포맷인 SBIX를 처음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이후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의 COLR/CPAL 포맷과 2014년 구글의 CBDT/CBLC 포맷 등이 개발되어 기업별로 각기 다른 방식의 컬러 이모지 폰트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으로 인해 컬러폰트라는 기술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Apple Color Emoji


 

컬러폰트의 종류 

컬러폰트는 현재 과도기에 있는 기술입니다. 기업별로 각자의 시스템에 맞춘 컬러폰트 포맷을 개발하면서 다른 시스템에선 호환이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아직까지 모든 환경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컬러폰트는 없습니다. 현재 컬러폰트는 플랫폼과 용도에 따라 네 가지 포맷으로 구분하여 제작되는데요. 그중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포맷은 COLR과 SVG입니다. 

COLR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포맷으로 다른 포맷에 비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다는 점과 작은 용량으로도 해상도가 자유롭다는 점 덕분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단순한 색상 표현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 발표된 COLRv1 포맷은 기존 COLRv0의 단점을 개선하여 벡터 기반이라 해상도 제약이 없고 블렌딩, 그라데이션 등의 표현도 가능해져 차세대 컬러폰트 표준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SVG는 웹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미지 포맷인 svg 형식의 데이터를 글자에 담은 폰트 포맷입니다. 벡터와 비트맵을 모두 지원하여 해상도의 제약이 없으며, 가장 최근의 기술이기에 대부분의 OS에서 지원한다는 점과 특히 웹 환경에서 사용성이 높다는 점은 큰 장점입니다. 

그 외에도 구글과 애플에서 각각 개발한 비트맵 기반의 CBDT/CBLC 포맷과 SBIX 포맷이 있습니다. 두 포맷은 각각 안드로이드와 iOS에서만 지원한다는 점과 비트맵 기반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파일 용량이 높고 해상도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최근에는 앞서 소개한 다른 두 포맷에 비해 많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어떤 컬러폰트가 있을까? 

단순한 표현만 가능했던 기존 컬러폰트의 단점을 해소한 COLRv1 포맷으로 개발된 폰트가 속속 출시되면서 컬러폰트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Typearture에서 출시한 「Nabla」는 빈티지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의 라틴 서체로 그라데이션이 적용되어 더 자연스럽고 풍부한 색상을 표현하였으며, 글자의 깊이를 조절하는 배리어블 기능도 지원하여 더 폭넓은 사용이 가능합니다. Underware의 「Plakato」는 그라데이션의 색상과 반경을 배리어블 기능으로 사용자가 직접 조정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웹에 적용 시 색상도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Harbor Type의 「Rocher Color」 등의 다양한 컬러폰트가 있습니다.

한글은 최소 2,350자, 최대 11,172자로 구성되는 많은 글자의 레이어마다 각각의 색상을 설정해 줘야 해서 비효율적인 공수가 발생하다 보니 한글 컬러폰트가 출시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러가 지원되는 한글 폰트는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죠. 산돌에선 2020년 「Sandoll 호요요Color」와 「Sandoll 둥굴림Color」를 출시하였는데요. 귀여운 이미지의 폰트에 컬러가 들어가 더욱더 생동감 넘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온뒤무지개제단의 「길벗체」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된 라틴 서체인 Gilbert의 한글판 폰트로 메인 버전인 무지개 색상 외에도 다양한 색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폰트릭스의 「Rix토이컬러」, 윤디자인의 「와글와글 컬러」 등이 있습니다.


「Sandoll 호요요Color」 Pumpkin


  

마무리

오늘은 컬러폰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과도기에 있는 컬러폰트는 아직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기술입니다. SVG, COLRv1 등 새로운 포맷이 아직도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배리어블 폰트에도 적용되면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단순히 색상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폰트를 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직까지 한글 폰트 시장에서 컬러폰트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출시된 한글 컬러폰트의 수가 10개도 채 되지 않는 것이 현주소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컬러폰트가 해결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만, 컬러폰트의 역사에서 얘기한 것처럼 폰트는 사용자의 수요가 있는 방향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습니다. 폰트가 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려면 폰트를 더 많이 사용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컬러폰트가 더 다양한 곳에서 활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의 작업물에도 컬러폰트를 사용해 보시면 어떨까요?

 

 

참고

COLRv1 and CSS font-palette | CSS-Tricks
What is COLRv1?
The Complete History of Emoji
Emoji
The History of the Emoji  — Pursue Persuade
This Was The First Computer Font



임창섭
타입테크팀
글자를 디자인하며, 폰트가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기술을 다듬는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