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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아하세요?
요즘은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침대에서든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죠. 그만큼 고를 수 있는 영화의 폭도 훨씬 넓어졌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시나요? 감독, 배우, 줄거리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건 제목과 포스터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상 영화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전달하는 시각적 언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영화의 첫인상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글자들을 소개해 볼게요.
영화 속 글자들
앞서 포스터를 언급했지만, 과거에는 영화 속 글자가 오늘날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어요. 초기의 영화는 소리와 대사 없이 영상만으로 구성된 ‘무성영화’의 형태로 시작했어요.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그래서 등장인물의 대사나 배경 설명까지 모두 자막으로 처리해야 했는데요. 영상 사이사이에 검은 화면에 자막을 띄우는 형식으로 삽입했는데, 이를 인터타이틀(Intertitles) 또는 타이틀 카드(Title card)라고 불러요. 말하자면 텍스트가 영화의 목소리를 대신한 셈이죠.

《리버티》(1929) 영화 속에 삽입된 인터타이틀 카드
출처: Intertitles for Modern (Contemporary) Times (링크)
이 시기의 자막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손글씨는 스피드볼(Speedball) 스타일이라 부르는데요. 1915년 출시된 ‘스피드볼’ 펜촉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까지 다양한 서체로 발전하면서 영화 자막에 사용되었죠. 둥글고 유려한 선으로 표현되었고, 글자 간격이 고르게 정돈되어 있어 짧은 시간 안에 지나가는 자막도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 《바빌론》(2022)에서는 무성 영화의 전성기를 그리며 당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스피드볼 펜으로 쓴 글자 스타일의 발전
출처: We Had Typefaces Then (링크)
기술의 발전으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런 인터타이틀은 점차 사라졌지만, 여전히 글자는 영화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오프닝 시퀀스의 자막처럼 기능적인 요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시대적 배경을 그리는 미술 요소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전달하는 언어 그 자체로서 기능하기도 하죠.

이처럼 영화 속에서 다양한 역할로 쓰이는 글자 중에서도, 오늘은 특히 포스터 속 글자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해요.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배경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반드시 제목을 담고 있는데요. 제목이 어떤 글자 형태로 표현되었는지에 따라 ‘이 영화가 어떤 분위기로 전개될 것인지’ 대략 예상해 볼 수 있죠. 따라서 같은 제목이라도 글자를 다르게 표현하면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도 해요. 아래에서 ‘같은 제목, 다른 글자’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같은 제목, 다른 글자
CG 없이 만든 환상적인 비주얼로 입소문 난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2024)은 2006년작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리마스터링 감독판으로, 재개봉 이후 유례 없는 흥행 기록을 세웠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감독판으로 새롭게 개봉하면서 포스터 속 타이포그래피도 눈에 띄게 변화했어요.
원작 포스터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콜라주 형식으로 배치해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제목은 클래식한 세리프 스타일을 적용해 신비로운 판타지의 느낌을 강조했어요. 날카로운 세리프와 길게 뻗어나간 곡선으로 화려하면서 고전적인 인상을 더했는데요. 2024년 감독판 포스터에서는 완전히 이미지를 바꿨어요. 붉은 배경과 인물을 적절히 배치하여 상대적으로 절제된 느낌이지만, 강렬한 색 대비로 인해 긴장감과 궁금증을 자아내죠. 그리고 제목은 극단적인 산세리프 스타일의 장체로 지면 위에 길고 크게 표현했어요. 영화의 제목인 ‘The Fall’이 가리키는 ‘낙하, 추락’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것처럼 보이죠. 원작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는 덜어냈지만 모던하고 강렬한 인상을 더해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비슷한 사례로 영화 《듄》의 포스터도 비교해 볼게요. 우리에게 더 익숙한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듄》(2021) 이전에 먼저 실사화된 버전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84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듄》 포스터에서는 우주선과 미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고전적인 세리프 스타일을 사용해 원작 소설의 대서사시 느낌을 강조했어요. 반면 2021년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에서는 비교적 단조로운 배경에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장식을 걷어낸 얇고 미니멀한 타이포그래피를 선택했죠. SF 장르의 특성상 기술적인 부분이 크게 발전하면서 그래픽의 퀄리티도 높아졌고 훨씬 미래적인 느낌을 강조한 타이틀을 적용한 것 같아요. 특히 ‘DUNE’이라는 알파벳을 모두 같은 형태로 통일한 점이 재미있는데요. 마치 우주선이나 행성의 궤도처럼 보이기도 해서 영화 속의 주요 이미지와도 연결되죠. 같은 영화라도 이렇게 시대와 감독의 시선이 달라지면서 타이포까지 멋지게 옷을 갈아입었네요.

시각적으로 번역하기
이번에는 같은 영화, 같은 제목이지만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 사례를 살펴볼게요. 먼저 작년 한 해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죠. 데미 무어 주연의 《서브스턴스》(2024)는 영문과 한글이 같은 규칙을 공유하며 번역되었어요. 포스터를 보면 정체불명의 약물을 중심으로 상단에 제목을 크게 배치했는데요. 제목은 컨덴스드 산세리프 폰트를 사용해 차갑고 통제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어요. 한글도 마찬가지로 좁은 폭의 민부리를 유지하며, 영문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서브스턴스’라는 글자에서 곡선이 전혀 없는 자소의 특징을 살렸어요. 두 언어 모두 글자의 폭이 모두 일정한 모노스페이스 구조를 적용해 인간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인상을 강조한 것처럼 보여요.

이 폰트는 영화 내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주인공이 사용하는 특수한 약물의 패키지,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에 대한 안내문에서도 동일한 폰트를 사용해 시각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강한 통제감을 부여하죠. 특히 모든 글자를 영문 대문자로 표기하여 더욱 강제성을 심어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스포일러 주의를 각별히 요하는 영화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꼭 영화 속에서 찾아보시길 바라요. 🤫

한편 언어에 따라 포스터 속 글자가 완전히 다르게 표현된 경우도 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2023) 의 포스터를 국가별로 살펴볼까요?
제작 국가인 일본 포스터에서는 부리 계열의 서체를 사용하여 ‘怪物(괴물)’이라는 두 글자를 큼직하게 배치했어요. 문학적이고 진중한 인상을 강조하면서, 스산한 분위기를 조용히 암시하는 소설 표지 같은 느낌이에요. 반면 영문 포스터에서는 어두운 배경 위에 흘러내리는 손글씨로 제목을 그려 음산한 분위기를 표현했는데요. ‘MONSTER’라는 글자에서 흔히 떠올리는 공포스러운 이미지와 두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대비하여 불길한 분위기를 암시하죠. 한편 한국 포스터에서는 ‘괴물’이라는 한글 제목을 크레파스 질감의 손글씨로 그려냈어요. 어린 아이가 쓴 듯한 글씨체로 유년기의 이미지를 더했지만 붉은 색으로 쓴 글씨가 주는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죠. 같은 영화를 다루면서도 국가와 언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번역된 점이 흥미로운데요.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미스테리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어요. 여러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 포스터는 어떤 버전인가요?

영화를 더 재미있게 읽는 법
이처럼 영화 포스터 속 글자는 단순히 제목을 나타내는 텍스트를 넘어서, 영화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같은 주제, 같은 제목이라도 시대나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제작자가 영화의 메시지를 글자에 담아 전달했다면, 관객인 우리는 다시 글자를 통해 영화를 예측하고 해석합니다. 이렇게 영화 바깥에 있는 글자들까지 유심히 살펴보면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읽어내는 재미를 배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영화 포스터에 쓰인 글자들을 위주로 살펴보았는데요. 여러분이 하나씩 마음에 품고 있는 영화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한 번씩 떠올려 보면서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시길 바라요. 영화의 숨은 의미가 한층 더 깊이 다가오는 계기가 될 거예요. 아직 다루지 못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영화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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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윤 |
웹플랫폼팀 |
글자와 영화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좋아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일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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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아하세요?
요즘은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침대에서든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죠. 그만큼 고를 수 있는 영화의 폭도 훨씬 넓어졌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시나요? 감독, 배우, 줄거리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건 제목과 포스터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상 영화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전달하는 시각적 언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영화의 첫인상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글자들을 소개해 볼게요.
영화 속 글자들
앞서 포스터를 언급했지만, 과거에는 영화 속 글자가 오늘날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어요. 초기의 영화는 소리와 대사 없이 영상만으로 구성된 ‘무성영화’의 형태로 시작했어요.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그래서 등장인물의 대사나 배경 설명까지 모두 자막으로 처리해야 했는데요. 영상 사이사이에 검은 화면에 자막을 띄우는 형식으로 삽입했는데, 이를 인터타이틀(Intertitles) 또는 타이틀 카드(Title card)라고 불러요. 말하자면 텍스트가 영화의 목소리를 대신한 셈이죠.
《리버티》(1929) 영화 속에 삽입된 인터타이틀 카드
출처: Intertitles for Modern (Contemporary) Times (링크)
이 시기의 자막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손글씨는 스피드볼(Speedball) 스타일이라 부르는데요. 1915년 출시된 ‘스피드볼’ 펜촉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까지 다양한 서체로 발전하면서 영화 자막에 사용되었죠. 둥글고 유려한 선으로 표현되었고, 글자 간격이 고르게 정돈되어 있어 짧은 시간 안에 지나가는 자막도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 《바빌론》(2022)에서는 무성 영화의 전성기를 그리며 당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스피드볼 펜으로 쓴 글자 스타일의 발전
출처: We Had Typefaces Then (링크)
기술의 발전으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런 인터타이틀은 점차 사라졌지만, 여전히 글자는 영화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오프닝 시퀀스의 자막처럼 기능적인 요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시대적 배경을 그리는 미술 요소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전달하는 언어 그 자체로서 기능하기도 하죠.
이처럼 영화 속에서 다양한 역할로 쓰이는 글자 중에서도, 오늘은 특히 포스터 속 글자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해요.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배경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반드시 제목을 담고 있는데요. 제목이 어떤 글자 형태로 표현되었는지에 따라 ‘이 영화가 어떤 분위기로 전개될 것인지’ 대략 예상해 볼 수 있죠. 따라서 같은 제목이라도 글자를 다르게 표현하면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도 해요. 아래에서 ‘같은 제목, 다른 글자’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같은 제목, 다른 글자
CG 없이 만든 환상적인 비주얼로 입소문 난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2024)은 2006년작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리마스터링 감독판으로, 재개봉 이후 유례 없는 흥행 기록을 세웠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감독판으로 새롭게 개봉하면서 포스터 속 타이포그래피도 눈에 띄게 변화했어요.
원작 포스터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콜라주 형식으로 배치해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제목은 클래식한 세리프 스타일을 적용해 신비로운 판타지의 느낌을 강조했어요. 날카로운 세리프와 길게 뻗어나간 곡선으로 화려하면서 고전적인 인상을 더했는데요. 2024년 감독판 포스터에서는 완전히 이미지를 바꿨어요. 붉은 배경과 인물을 적절히 배치하여 상대적으로 절제된 느낌이지만, 강렬한 색 대비로 인해 긴장감과 궁금증을 자아내죠. 그리고 제목은 극단적인 산세리프 스타일의 장체로 지면 위에 길고 크게 표현했어요. 영화의 제목인 ‘The Fall’이 가리키는 ‘낙하, 추락’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것처럼 보이죠. 원작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는 덜어냈지만 모던하고 강렬한 인상을 더해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비슷한 사례로 영화 《듄》의 포스터도 비교해 볼게요. 우리에게 더 익숙한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듄》(2021) 이전에 먼저 실사화된 버전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84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듄》 포스터에서는 우주선과 미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고전적인 세리프 스타일을 사용해 원작 소설의 대서사시 느낌을 강조했어요. 반면 2021년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에서는 비교적 단조로운 배경에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장식을 걷어낸 얇고 미니멀한 타이포그래피를 선택했죠. SF 장르의 특성상 기술적인 부분이 크게 발전하면서 그래픽의 퀄리티도 높아졌고 훨씬 미래적인 느낌을 강조한 타이틀을 적용한 것 같아요. 특히 ‘DUNE’이라는 알파벳을 모두 같은 형태로 통일한 점이 재미있는데요. 마치 우주선이나 행성의 궤도처럼 보이기도 해서 영화 속의 주요 이미지와도 연결되죠. 같은 영화라도 이렇게 시대와 감독의 시선이 달라지면서 타이포까지 멋지게 옷을 갈아입었네요.
시각적으로 번역하기
이번에는 같은 영화, 같은 제목이지만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 사례를 살펴볼게요. 먼저 작년 한 해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죠. 데미 무어 주연의 《서브스턴스》(2024)는 영문과 한글이 같은 규칙을 공유하며 번역되었어요. 포스터를 보면 정체불명의 약물을 중심으로 상단에 제목을 크게 배치했는데요. 제목은 컨덴스드 산세리프 폰트를 사용해 차갑고 통제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어요. 한글도 마찬가지로 좁은 폭의 민부리를 유지하며, 영문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서브스턴스’라는 글자에서 곡선이 전혀 없는 자소의 특징을 살렸어요. 두 언어 모두 글자의 폭이 모두 일정한 모노스페이스 구조를 적용해 인간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인상을 강조한 것처럼 보여요.
이 폰트는 영화 내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주인공이 사용하는 특수한 약물의 패키지,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에 대한 안내문에서도 동일한 폰트를 사용해 시각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강한 통제감을 부여하죠. 특히 모든 글자를 영문 대문자로 표기하여 더욱 강제성을 심어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스포일러 주의를 각별히 요하는 영화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꼭 영화 속에서 찾아보시길 바라요. 🤫
한편 언어에 따라 포스터 속 글자가 완전히 다르게 표현된 경우도 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2023) 의 포스터를 국가별로 살펴볼까요?
제작 국가인 일본 포스터에서는 부리 계열의 서체를 사용하여 ‘怪物(괴물)’이라는 두 글자를 큼직하게 배치했어요. 문학적이고 진중한 인상을 강조하면서, 스산한 분위기를 조용히 암시하는 소설 표지 같은 느낌이에요. 반면 영문 포스터에서는 어두운 배경 위에 흘러내리는 손글씨로 제목을 그려 음산한 분위기를 표현했는데요. ‘MONSTER’라는 글자에서 흔히 떠올리는 공포스러운 이미지와 두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대비하여 불길한 분위기를 암시하죠. 한편 한국 포스터에서는 ‘괴물’이라는 한글 제목을 크레파스 질감의 손글씨로 그려냈어요. 어린 아이가 쓴 듯한 글씨체로 유년기의 이미지를 더했지만 붉은 색으로 쓴 글씨가 주는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죠. 같은 영화를 다루면서도 국가와 언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번역된 점이 흥미로운데요.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미스테리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어요. 여러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 포스터는 어떤 버전인가요?

영화를 더 재미있게 읽는 법
이처럼 영화 포스터 속 글자는 단순히 제목을 나타내는 텍스트를 넘어서, 영화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같은 주제, 같은 제목이라도 시대나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제작자가 영화의 메시지를 글자에 담아 전달했다면, 관객인 우리는 다시 글자를 통해 영화를 예측하고 해석합니다. 이렇게 영화 바깥에 있는 글자들까지 유심히 살펴보면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읽어내는 재미를 배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영화 포스터에 쓰인 글자들을 위주로 살펴보았는데요. 여러분이 하나씩 마음에 품고 있는 영화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한 번씩 떠올려 보면서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시길 바라요. 영화의 숨은 의미가 한층 더 깊이 다가오는 계기가 될 거예요. 아직 다루지 못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영화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좋아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