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입브랜딩]타입브랜딩에서 브랜드를 빼면 어떻게 되나요?

타입브랜딩


…여기서 뭘 뺀다고요?

타입브랜딩*이란 브랜딩의 한 가지 방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브랜딩은 브랜드 정체성을 핵심으로 합니다. 앞선 문장의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브랜드’인데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시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타입브랜딩에서 브랜드를 소거하면 어떻게 될까요?” 국어사전에서는 핵심을 빼고 남은 것은 껍데기라고 부릅니다. 타입브랜딩에서의 껍데기란 무엇일까요? 본 아티클은 타입브랜딩이지만 브랜드를 빼먹은 껍데기. 그러니까 팥 없는 찐빵. 홍철 없는 홍철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체에 따라서 타이포브랜딩, 폰트브랜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나, 산돌에서는 타입브랜딩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브랜드 보다 가독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타입브랜딩 사례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이 폰트의 형태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폰트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어떤 브랜드의 폰트임을 알아보기 쉬운데요. 대표적으로는 현대카드 「유앤아이」가 있습니다. 마치 소비자가 브랜드 심벌이나 컬러로 브랜드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듯, 타입브랜딩이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폰트로서의 활용성에만 집중하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국내 사례 중에는 전자책 폰트를 개발한 리디 「리디바탕」이 여기에 해당하는데요. 리디는 전자책에서 독자의 불편한 경험을 개선하고자 「리디바탕」을 개발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리디바탕」은 리디의 브랜드적인 특징을 담은 폰트가 아닌, 오로지 전자책에서의 가독성에 집중한 폰트입니다. 한눈에 또렷하게 읽히도록 속 공간을 늘리고 불필요한 장식을 정리하여, 모바일에서의 가독성을 높였죠. 또 긴 문장에서 잘 읽히도록 상단의 시각 중심선을 정렬해 시선의 흐름이 편안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리디. 가변폭과 글자 사이 공간으로 편안한 시선의 흐름을 유도한다.

리디. 곧은 상투와 곁 줄기 붙임은 문자가 작아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리디. 장식을 제거하여 향상된 가독성이 높다. (링크)



브랜드 보다 사용성

타입브랜딩의 대표적인 사례로 빠지지 않은 것이 네이버 『나눔』 시리즈입니다. 네이버는 2008년부터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 일환으로 다양한 폰트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제작해온 폰트를 종수로 이야기하면 150여 종에 달하는데요. 관련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브랜드가 배포만 무료 폰트 개수로는 최대 수치일 것입니다. 네이버는 폰트를 통해 브랜드적 개성을 강조하기 보다, 온라인 환경에서의 다양한 사용성에 집중하여 폰트를 개발했습니다.

 

“네이버가 서체를 만드는 줄은 몰랐던 사람이라도,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 안에 『나눔』 글꼴 하나씩은 다 깔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눔고딕」, 「나눔명조」, 「나눔스퀘어」 같은, 과제에도 쓰고, 업무에도 쓰고, 이력서에도 썼던 친숙한 서체들 말이죠.”
-네이버가 만드는 서체는 무엇이 다를까?, 덕업일치, 2022(링크)


“그동안 네이버는 온라인 세상에서 한글로 작성된 많은 정보들이 보다 아름답게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체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 왔어요. 여타 브랜드 서체들이 브랜드 자체에 초점을 맞춰 강한 개성이 드러나도록 개발된 것과 달리, 네이버는 스스로를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좀 더 사용자에 집중한 서체를 만들었습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내 것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사용자에게 필요한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서체를 제공하고 있는가’는 언제나 네이버에게 우선순위 1번 과제였죠.”

-네이버가 만드는 서체는 무엇이 다를까?, 덕업일치, 2022(링크

네이버.  2008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네이버 나눔 글꼴 패밀리 (링크)



브랜드 보다 범용성

일본의 가전기업 파나소닉(パナソニック)과 이와타(イワタ)가 「UD폰트」를 개발한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UD’는 유니버셜 디자인(UD)을 뜻하며,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에 제약을 받지 않는 범용적인 디자인을 의미하는데요. 노화로 시력이 저하되거나, 작거나 복잡한 글씨를 읽기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획수가 많은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UD폰트」는 아름다움보다 보기 쉬운 폰트를 추구합니다. 명조의 획을 심플하게 정리하고, 고딕의 장식을 배제하여 한자의 부수를 크게 늘렸죠. 알파벳의 ‘S’나 숫자 ‘3’과 ‘8’, 알파벳 ‘O’와 ‘C’, ‘G’ 등 잘못 읽기 쉬운 문자의 판독이 쉽도록 디자인했습니다.

파나소딕은 해당 사례만이 아니라, 다양한 범위에서 ‘UD’를 실현하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 설치된 에어컨 필터 청소는 고령자나 임신부 등에게 부담이 큰 작업으로, 이를 위해 스스로 청소하는 에어컨을 개발했어요. 또, 언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포터블 음성출력기기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사내 디자이너, 개발자뿐만이 아니라, 마케팅이나 출하 부문에 있어서도 구체적은 ‘UD’ 가이드라인을 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나소닉은 구태여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아요.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오직,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가전을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는 것에 있습니다. 모든 기업에게 있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요. 하지만 파나소닉은 누구에게 좋은 제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브랜딩에 있어 타겟에 대한 구체적인 페르소나를 구축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포지셔닝이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타. 폰트의 선이 두껍거나 얇으면 경우에 따라 제대로 읽기 어렵다.

이와타. 대칭이거나 외형이 비슷한 문자는 경우에 따라 제대로 읽기 어렵다.

이와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문자의 판독이 쉽도록 디자인되었다. (링크)



그러니까 타입브랜딩이란 뭘까요?

타입브랜딩에서 브랜드나 타입을 소거해도 여전히 타입브랜딩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타입브랜딩의 본질이 브랜드나 타입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질은 브랜드의 이야기에 있습니다. 브랜딩의 시작은 다른 브랜드와의 구분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것입니다. 때문에 브랜딩이란 상품이 아니라 이야기를 근거로 하죠. 타입브랜딩도 다르지 않습니다.

타입브랜딩에서 브랜드만을 강조하기 위해 폰트로서의 활용을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혹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폰트로서의 활용성을 강조하면 어떻게 될까요? 타입브랜딩뿐 아니라 브랜딩 관점에서도 들여다볼 가치가 없는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본질은 브랜드의 이야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입브랜딩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사례들을 살펴보면 좀더 명확하게 설명됩니다. 리디가 「리디바탕」을 통해 전달한 것은 “전자책의 불편함이 해소되는 경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네이버가 『나눔』 시리즈를 통해 전달한 것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서체 환경을 개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파나소닉이 「UD폰트」를 통해 전달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가전을 사용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타입브랜딩이란 브랜드에 없었던 전략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만능 솔루션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폰트를 개발해도 브랜드와의 당위가 약하다면, 좋은 타입브랜딩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브랜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있습니다. 즉, 본질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있습니다. 타입브랜딩은 이를 타입으로 형상화하고, 단순한 글자를 넘어 브랜드의 이야기를 표출하는 고유한 목소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용호
브랜드디자인팀
좋은 이야기에는 우리 사이를
근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